메뉴 건너뛰기

생명을 얻어가는 믿음 #4

2018.01.30 10:18

PastorShawn 조회 수:5

1/19/2018

생명을 얻어가는 믿음 #4

 

4. 생명을 얻어가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 앞에 선다는 뜻입니다.

 

지금 한국과 미국이 총체적으로 위기입니다. 너무나 어지럽고 위태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은 이러다가는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 위기의 핵심은 교회가 너무나 복음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서 우리는 구한말 평양대부흥을 통해서 얻은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제의 압박과 국권의 상실의 위기 속에서 성도들은 나라를 걱정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죄를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일본사람들을 미워한 죄까지 울부짖으며 회개하였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 이러한 영적대각성의 회개가 되어질 때 나라를 잃어버렸고 일제의 혹독한 압제는 시작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나라가 잘 되고, 국민의 배가 부르고, 일제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러한 징계와 환난을 통해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못한 죄에서 구원받도록 개인이, 교회가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저에게 필요한 것이 이러한 회개입니다.

나라가, 사회가, 교계가 이렇게 된 것이 누구의 잘못입니까? 어차피 정치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불신자들입니다. 어차피 세상의 임금은 사단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장망성입니다.

이 일들은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는 작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요, 그리스도 언약 중심으로 성취해 나가시는 구원의 계획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치 않으시는, 주권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의 초점인,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가, 그 교회인 내가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사의 핵심 내용으로 움직여지는 십자가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러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을 실제적으로 못 누리고, 또 못 누리기에 이러한 요동치는 세상에서 바른 증인으로 서지 못하고 있는 그 죄를 회개해야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14:8).

언제 내가 주를 위해서 살고, 언제 내가 주를 위하여 죽었습니까? 언제 내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영광 돌리면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살아도 나를 위해서 살았고, 또 나를 위해서 죽지 않으려고 바둥바둥했습니다. 정말로 나에게는 선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뭐가 잘났다고 으시대고 껍쩍댑니까? 정말로 나는 벌레처럼 무시당하고 먼지처럼 없어져도 오직 그리스도만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까? 아닌데요. 조금만 무시당해도, 조금만 내 자존심이 짓밟혀지면 죽이겠다고 달려드는데요?

믿음이 없는 자여, 내가 언제까지 참으리요?”라는 책망이 나에게는 당연한데요. 그런데 어쩜 그렇게 믿음 있는 척하면서 위선합니까? 바닥에서부터 처절하게, 뼈저리게 통곡의 회개가 진정으로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나를 죽여 주옵소서 하고 납작 업드려져야 하는데요.

구원 주셨는데 그 구원을 못 누리는 죄, 하나님 나라를 주셨는데 그 하나님 나라를 못 누리는 죄, 사랑을 주셨는데 그 사랑을 못 누리고 못 나누는 죄, 복음을 주셨는데 그 복음을 못 누리고 그 복음을 마음껏 못 전하는 죄. , 주님, 개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재창조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실제적으로 날마다 하나님 나라로, 주님의 세계로 옮겨주셔야 합니다. 주님, 지금 육신적인 것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나에게 불가능한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임했는데, 그것을 취하지 못하고, 그것을 간절히 마음으로부터 구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목숨보다도, 죽음보다도 더 간절하게 원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지금 그런데로 건강하다 하더라도, 주님이 이 순간에 데려가시면 내일은 이 땅에서는 없는 것인데, 왜 이리 이 땅에서 육신적인 것에 미련이 많고, 그것으로 죽고 못 사는 것처럼 바둥바둥댑니까?

내일 하루를, 아니 오늘 하루를 주님 위해서 온전히 영광 돌리며 살지 못하면, 그 다음 날의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복음에 갈급한 사람들에게 믿음의 모델로서 산 증인의 역사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음을 회개합니다.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인간의 육신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달콤한 메시지로, 감성을 촉구시키는 찬양과 세상문화를 복사해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청소년들을 달래보려는 교회가 참교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지 못함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러한 잘못된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심령이 차단되어진 가운데에, 참 복음을 듣고자 마음이 열려 갈급해 하는 영혼들에게 증거할 수 있는 생명의 열매가 없기에 증거하지 못함을 회개합니다.

코람 데오로 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에게 진단 받겠습니다(139:23-24).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서기를 원합니다(51:10).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게 하여 주옵소서(5:3). 말씀의 검으로 하나님에게 수술받기를 원합니다(4:12).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코람 데오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날마다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길을 주님과 함께 걷는 생명의 교제로 점점 더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내가 지금 인격체로서 내 앞에서 듣고 계시고, 보고 계시고, 앞서 가시는 그 아버지에게 나의 불신앙이 드러나도록 애통한 심령으로 무릎 꿇기를 원합니다. 마음껏 야단치시고, 마음 껏 지적하시고, 이제는 사람의 인정과 세상의 보장보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의 구조와 세상 나라의 구조는 다르지 않습니까? 세상은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하고, 그래서 계속 올라가야 된다고 하고, 잘해야 유능하다고 하고, 높아져야 행복하다고 속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도 똑같이 속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속고 있는 우리의 마인드를 하나님은 지금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부숴버리겠다고 내 마음에 아마겟돈의 전쟁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내 마음의 불신앙을 부술 수가 없기에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그 세계를 부수고 있지 않습니까? 잘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고, 잘하나 못하나 결국 하나님이 없는 세계는 똑같이 둘 다 사망의 세계라고 지금 책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높아지는 것이나 낮아지는 것이나 결국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결국 그것이 사망이라고 책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넘어가 부활을 누리는 세계는 가난해도 부해도 감사하고, 높아져도, 낮아져도 감사하고, 병이 치유 되도, 치유 안 되어도 감사가 되어지는 세계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 지식이 조금 없어도 그것 때문에 눌리지 않고, 세상 지식이 많아도 교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알고 얻어가는 것에 모든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할 때 슬퍼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살았습니다. 아니 지금도 내가 너무나도 팔팔하게 살아있습니다. 내가 살기를 원하고 또 살립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옛사람의 나를 다시 계속 살립니다. 무너진 여리고를 다시 세우는 죄를 계속 짓고 있습니다(6:26).

제일 시급한 것이 이러한 불신앙 해결인데, 제일 조급해야 할 일은 이러한 불신앙 해결인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불신앙이 안 보이는 문제가 아닙니까? 그리고 더 심각한 이슈는 이러한 불신앙을 보라고 이런 저런 환경의 일들과 관계의 일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안 보이는 영적 장님의 불신앙이 아닙니까?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9:40-41).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3:17-18).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마겟돈의 전쟁을,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마겟돈의 전쟁을,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마겟돈의 전쟁을 지금까지 똑바로 보지 못한 불신앙을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오직 십자가에 죽어지고 부활되어지는 믿음을 얻게 해달라고 울부짖는 것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벌어진 최고의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되어짐으로 구원받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또 여러분과 저에게 지속적으로 죽을 때까지 날마다 체험되어져야할 기적은 날마다 이러한 불신앙에서 십자가에서 죽어지고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적으로 누리는 부활의 삶으로 살아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