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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얻어가는 믿음 #3

2018.01.30 10:17

PastorShawn 조회 수:4

1/12/2018

생명을 얻어가는 믿음”(5:12-14) #3

 

3. 생명을 얻어가는 믿음은 나의 삶을 통해서 십자가의 복음이 드러남으로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는 삶입니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리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5:12-14).

여러분과 저의 삶이 불신자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확신은 확실하기에, 누가 물어봐도 나는 그리스도입니다하는 것과, 죽어서 하늘나라 간다는 것뿐이지, 겉으로는 불신자와 똑같은, 아니 더 못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조차 단 일주일에 한번 혹은 몇 번 만나는 교인끼리 습관적으로 서로 웃어야 하고, 싫은 사람은 마냥 싫고, 나하고 뭔가 통하는 사람과만 주고받고, 나머지는 그저 무관심하면서, 한 주일 한 주일 지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일까요? 직장과 사업터에서 만나지는, 부부갈등과 자녀들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에디오피아 내시처럼 갈급한 심령들에게 대한 관심이라도 있고, 루디아처럼 준비된 심령들에게 줄 답이라도 있을까요? 지금 열심히 일해야 노후대책이 준비되고, 성경에서도 열심히 일하라고 했으니 일하고, 아니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상황에 대해서 만족하고, 세상에 대해서는 미련없다고 매일 감사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일까요? 저는 지금 전도와 선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고, 무엇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영광 받는다는 것입니까? 혹시라도 성경 읽고, 기도 좀 하고, 설교말씀 통해서 은혜 좀 받고, 신앙서적을 통해 깨달음으로 세상에 대한 염려를 물리치는 것 정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성경과 믿음의 선배들의 증거를 통해 확인되는 것은 분명히 이러한 우리들의 삶과는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들은 분명히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렸고, 분명히 세상 그리고 잘못된 복음과는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하늘의 평화와 신령한 복을 이 땅에서 누렸습니다. 그 생명의 누림이 성도들과의 진정한 사랑의 사귐으로 보여졌고, 이 하나님 나라의 사귐은 자연적으로 교회 바깥의 현장에서도 복음전파로 증인의 삶으로 확산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이렇게 누렸던 믿음의 한 가지 공통점, 그래서 신앙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달랐던 구원의 누림이 발견되어집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날마다 동참되어지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나라고 하는 이미 법적으로 죽은 옛 사람이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세상에서 물들은 불신앙 체질이 점점 더 죽어지고 내 안에 오직 그리스도가 내 인생을 사시는 믿음이 누려질 때, 자연적으로 삶의 모든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모든 것을 온전하게 헌신하며, 생명운동의 증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여러분과 저도 이러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고서 이 땅에 남아있는 목적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생명을, 더 풍성히 얻어감으로, 그 생명이 바깥으로 전파되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시는 것이 실제로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교회는 생명을 누리고 생명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게 한 것이 창세기 3장 타락 사건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주권과 작정에 변함이 없으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으로 창세기 3장 사건을 해결하시고,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그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요, 하나님의 목표이고 계획이요, 여러분과 제가 남은 생애를 통해서 누릴 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갈등해야만 합니다. 그냥 이렇게 하루 하루 귀한 하나님의 시간을 낭비하면서 살수는 없습니다.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통해서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질문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정확하게 진단되어지도록 가난해지고, 애통해 하는 심령을 달라고 간구하고,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으로 변화 받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에게 속는 신앙생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이미 법적으로 완벽하게 임한 하나님 나라의 시스템이 있고, 아직도 세상 나라의 시스템에 각인되어져있는 육신의 죄성이 실제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구조가 날마다 세상나라 시스템에서 하나님 나라 시스템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의 삶에서 현재 진행되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의 모든 면에서, 오늘도, 지속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이것만 못 보도록 우리 안에 길들여져 있는 불신앙을 계속 부추킵니다. 그래서 불신자처럼 살도록 합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통해서 하나님은 구원의 일을 하시는데,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 그 사람을 보고, 그 문제만 보고, 그 사람을 또 육신적인, 죄인의 관점에서 선악을 판단하면서 이 귀한 구원의 삶에 대해서 사단에게 속습니다.

또 사단은 반대로 우리가 인간의 열심있는 행위로(의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나의 의를 부추킵니다. 성경은 인간이 잘한 것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인 한 번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인간이 잘한 것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잘 하는 것을 드러낸다면 죄 잘 짓는 것을 드러낸 것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중요성은 아는데 불신앙의 심각성은 너무나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된 죄가 얼마나 우리의 삶에 깊숙이, 모든 면에 파고들어 우리를 부패시켰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죽으시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죄 문제입니다. 이 원죄로 태어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이토록 죄로 물들었기에 당연히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제일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자신의 상태를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서 깨닫기 시작하면 인생의 꼬여진 실타래가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과정에서 체험되어지는 환난의 고통은 불신앙이 발견되어지고 무너지는 것부터 시작이 됩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나의 나라의 시스템으로 해왔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강한 빛처럼 밝혀질 때, 처음에는 혼동과 거부감, 그리고 무기력함과 수치심이 같이 올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 강한 성이 통째로 무너지는데 안 그렇겠습니까?

불신앙의 실체가 안보이면 믿음의 실상은 당연히 얻어지지 않습니다. 사울과 골리앗이 상징하는 나의 불신앙이 드러나야 다윗이 예표하는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불신앙이라는 죄가 사함을 얻는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방법으로서, 여러분과 제가 지금, 날마다, 모든 일 속에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되어져야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체험되어지지 않겠습니까?

불신자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없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죄사함을 못 받아서 실패하는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함 받은 죄에 대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확인해 나가는,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삶을 체험하지 못하기에 승리를 체험하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잠시 얼마동안 떠났다가(4:13),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했을 때 또다시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이 하나님의 일을 감히 막으려고 했습니다(16:21-26). 그렇다면 사단이 여러분과 저에게 무엇에 대해서 속이려고 하고 무엇만 하지 못하게 방해하겠습니까? 오직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지속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도록 속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의 불신앙이 십자가의 죽음에 넘겨지는 고통이 올 때도 고통만 바라보게 하지 그 고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은혜는 못 보도록 속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로 경험되어지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 속에서, 교회에서 확장되어지는 것을 사단은 도저히 보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십자가의 과정을 통해서 내 속에 있는 불신앙들이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하나씩 하나씩 발견되어지고 벗겨지도록 수많은 과정을 허락하시는 섭리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열심입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있는 수많은 사울과 수많은 골리앗과 수많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뿌리가 발견되어져서 구원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나의 한계가 드러나는 환경을 통해서,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갈등을 통해서 나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죄가 책망되어지는 은혜를 주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나의 죄성이 드러나도록 실수를 허락하십니다. 상대방이 엉뚱하게 나를 비방하고 공격할 때 반응하는 나의 죄성이 드러나도록 억울한 말도 듣게 하십니다. 혹은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의 행동이 어처구니없고, 후회막심할 정도로 실수하는 것도 허락하심으로 내가 세운 나의 나라의 실체가 드러나도록 하십니다.

성령님은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나의 죄를 드러내시고 또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서 하나님의 긍휼을 얻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판단을 받아 가슴이 찔리는 애통함의 회개가 되어져야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를 얻게 됩니다(5:4). 실수한 나의 체면을 살려보겠다고 또 다른 인본주의로 나의 수치를 가리려는 행위는 또 다른 불신앙으로, 죽은 옛사람을 다시 살리려는, 구원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요, 여리고성을 재건축하는 죄입니다.

이토록 나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구원의 일로 보여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말합니다. (5:20)

그래서 나의 불신앙이 깨달아지고 회개되어지는 과정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만큼 지금까지 길들여진 나의 나라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고통이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평생을 걸쳐야할 정도로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또 평생 주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으로만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에 감사와 소망이 있는 과정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시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이 길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고, 오직 이 십자가의 과정이 실제적인 믿음으로 체험되어지고 누려질 때 십자가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믿음의 모델의 삶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이 십자가의 과정이 날마다, 실제적으로 체험되어질 때 하나님은 나의 삶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영광 받으실, 구체적인 일을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