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생명을 얻어간는 믿음 #2

2018.01.30 10:16

PastorShawn 조회 수:1

1/5/2018

생명을 얻어가는 믿음”(3:15) #2

 

2. 생명을 얻어가는 믿음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믿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하시는 일로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내가 원하는 것을 도와주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망을 이루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을 때는 하나님을 드러내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겠습니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삶의 일이요, 과정이요,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창조주가 피조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항상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만물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려고 창조한 것이고, 인간은 만물 중 가장 잘 하나님을 드러내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우리가 그렇게 살아지게 되면 가장 행복하고, 가장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 특별히 인간에게 당신의 형상을 주셨는데, 우리는 첫 인간인 아담과 함께 사단에게 속아 내가 영광 받겠다는 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목적이 취소되거나 실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의 하나님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되는 언약을 당신이 직접 성취하시겠다고 우리에게 은혜의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3:15절의 복음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통한 구원의 일입니다. 이것이 은혜 언약의 핵심입니다.

이 은혜 언약이 계시록 22장까지 계속 되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내용이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이것을 점진적 계시라고 합니다. 이 그림이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3:15의 원시복음을 주신 후로는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하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행위로는 실패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코 행위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그 안에는 죄가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이 간단한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대로 살겠다 라는 것은 타락 전 아담만 할 수 있었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모든 후손은 행위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을 통해서는 불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가 순종하고 살 수 있도록 하셔야만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당신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은혜 언약입니다. 우리가 은혜대로 살아지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믿어지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나의 믿음이 되어지면 순종하는 삶이 되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면 원래 목적이 회복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내가 그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틀입니다. 이 틀을 가지고 성경의 모든 것이 풀려야 합니다. 이 틀을 가지고 믿음으로 인생을 살게 되면 이것이 최고의 삶이요,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복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이 먼저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선을 행할 힘이 없습니다. 복음은 허물과 죄로 죽은 너희를 살리셨도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우리를 살리셔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착하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또 육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3장에 사도바울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신으로 마치겠느냐?”

중생은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 다음도 하나님의 힘으로,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이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10:10). 신앙생활이 바로 이 생명을 더 풍성하게 누리는 것인데, 우리가 열심히 해서 풍성하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하십니까? 예수님이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키입니다.

신앙생활이 이처럼 풍성하게 살아지지 않는 것은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하시는 일은 항상 죽음으로 인도하고 부활시키는 것인데, 왜 우리가 이것을 체험 못합니까? 이것을 육체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하라고 했는데, 순종하라고 했는데, 율법 지키라고 했는데...”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았다고 내가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내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열심히 하고 그것을 죄로 깨달으면 됩니다. 나에게서 나오는 것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내가 하는 것이 하나님 하시는 일로 됩니까? 내가 열심히 하고, “, 이것이 은혜로 되어지는 삶이구나!”라고 깨달을 때까지 열심히 살면 됩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지는 것이 정말로 깨달아지면 내 의가, 내 주장이 나오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를 소멸시키시고, 이 생명의 세계를 더 풍성하게 하셨구나. 나는 죄 지은 것밖에 없는데, 나는 열심히 살라고 해서 살아보니 그것이 전부 죄구나. , 그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더 깨닫기 위해서구나.”

그래서 성경에는 명령형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신자에게도 하라 하지 말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할 수 있기에 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율법은 내가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에게 인도되는 몽학선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하루를 살고, “내 열심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최선으로 살았다고 생각할수록 내가 더 하나님 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못사는 사람에게 틀림없이 정죄할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 내가 옛사람대로 살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내 안의 새사람으로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옛사람대로 열심히 살고, 그것을 죄로 깨닫고,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구원의 일을 하시는구나. 죄는 죽이시고, 그리스도가 더 충만하게 하시고, 구원의 일을 하시는구나.”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선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대로 라면 나는 죽었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2:20).

내가 없어질수록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체험할 것입니다. 이것이 체험되어질수록 겸손해질 것입니다. 점점 내가 하는 것은 없어지고, 그리스도께서 풍성하게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일인데 내가 나를 드러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왜 힘듭니까? 왜 교인끼리 시기, 질투합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내 옛사람이 아직도 펄펄 살아있다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보게 하십니다.

점점 이렇게 되면 이제는 할 말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밖에는 안 보이는데.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체험되어짐으로 점점 그리스도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죽을 때까지의 과정입니다.

2:20은 먼저는 법적인 것입니다. 실제적으로는 내가 아직 완전히 안 죽었습니다. 완전히 죽는 것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입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계속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을 매일 매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점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누림이 풍성해지고, 내 안에 있는 죄의 힘은 점점 약화되어지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을수록 나는 죄밖에 없구나, 이것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집니다. 죄를 더 볼수록 은혜가 더 풍성해집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삶에서 세상 기준으로의 좋고 안 좋고, 있고 없고, 잘하고 못하고가 상관이 없게 됩니다. 전부가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을 얻어가는 믿음은 지금도 내 삶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구원의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로 보여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하나님은 당신의 영원하신 언약의 뜻을 오늘도 성취하시는 일을 나의 삶에서 열심히 행하시기 위해서 오늘도 구원되어져야할 육신을 건드리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말씀과 성령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실제적으로 사소한 인간관계의 이슈를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육신중심의 말을 나의 선과 악의 기준으로 판단한 육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점점 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새로워지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이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보여지는 것을 생명을 얻어가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이 이제는 점점 더 믿음의 영안으로 보이고, 육성으로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으로 들려지고, 만져지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내 마음에서부터 부패한 죄성을 건드리시는 성령의 역사로 깨달아지는 것이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