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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안에서의 묵상

2018.01.05 14:12

PastorShawn 조회 수:6

 

성령 안에서의 묵상

(119:1-176)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변화의 열매가 맺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주님과의 동행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주님과의 동행함이 이루어지지 않는 핵심 이유는 바로 성령 안에서의 묵상을 못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너무나도 많이 묵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특별히 시편을 통해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시편에 묵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뿐이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묵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성경 안에서의 믿음의 사람들과 교회사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은 공통적으로 성령 안에서의 묵상을 누렸습니다.

묵상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하가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의성어로서 우리말에 비둘기 울음은 구구라고 표현하지만 히브리어는 비둘기 울음을 하가 하가로 표현합니다. 비둘기가 읊조리는 데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기본 뜻으로는 곰곰이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지며, 때로 묵상은 중얼거리거나 읊조리는 것, 혹은 나지막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단어의 어근을 볼 때 묵상이란 영원한 진리에 대해 깊고 반복적인 숙고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묵상은 이성적 활동만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묵상은 전인격적인 활동으로 인도되어집니다.

성령 안에서의 묵상은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불붙게 되어있으며, 죄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그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믿음의 행위로 연결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묵상만큼 참된 변화를 가져오는 성화의 삶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1. 묵상은 성화의 중요한 비밀입니다.

시편 119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편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으로 인도되어지는 묵상을 통한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는 복음의 과정을 계속 증거하고 있습니다.

묵상은 자기 영혼을 성찰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저는 묵상을 하나님의 거울로 나를 비추어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모릅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선적으로는 자신의 영적상태를 정확하게 보지도 못하고, 보려고 하지도 않고, 볼 시간도 없고, 감각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서 나를 보지 못하면 진정한 영적 진단은 안 되어집니다. 진정한 영적 진단이 안 되면 참된 회개도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인생은 허상을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허상을 보면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로 되어지는 묵상은 나의 영적상태를 점점 더 정확하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합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9-11)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우리가 중요하게 깨달아야할 것은 묵상은 성령 안에서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으로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도 묵상을 하고 특별히 모든 종교와 뉴에지운동 같은 단체들, 심지어는 많은 대기업들이 명상 혹은 묵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귀신의 역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12:43-45)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으로부터 지배되어지도록, 그리고 하나님으로 채워질 때 행복하도록 의도되었는데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 묵상과 명상으로 그 마음과 생각을 비우면 무엇이 들어가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한 단계 더 들어가서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중생된 영혼이 말씀과 기도를 하면 자연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나의 영적 상태가 깨달아지고 자연적으로 성화로 이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묵상은 반드시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16:8-14) 하나님의 일이 믿어지는(6:28-40) 믿음의 과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했으나 이미 죄성으로 길들여진 나의 체질의 모든 옛 시스템이 하나씩 하나씩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어지고 부활되어지는 구원의 일이 체험되어지는 과정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묵상만이 곧 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묵상입니다.

묵상할 때 사용되어지는 중생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죄로 물들었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으로 인도되어지는 묵상이 되어져야 합니다.

2. 성령님께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묵상 되어질 때 나의 영혼을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가십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의, 생각의 영적 현주소를 보여주십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성령 안에서의 묵상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우선적으로 나의 마음과 생각이 어느 정도로 부패했는가를 먼저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님의 조명은 일단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깊은 묵상을 통하지 않으면 보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4:12)

성령의 영감에 의해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이 나의 마음에 들려지게 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구체적인 성령의 역사의 과정은 나의 생각의 묵상의 통로를 반드시 거쳐서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나의 부패한 생각이 말씀과 성령의 깨우치시는 역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정화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입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다루어져야할 십자가를 통과하는 믿음의 과정이라는 구체적인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이 묵상의 과정을 통해서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나의 삶의 구체적인 부분에서 고쳐져야할 부분은 고쳐지도록 믿음의 행동으로 옮기는 동기부여도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또한 십자가의 과정이요, 회개의 과정이요, 성화의 과정이요, 진정한 개혁입니다. 그 내용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말씀이 나에게 생명화, 인격화, 개인화, 생활화 되어지는 중요한 비밀이 묵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묵상이 우리의 영적인 삶에 얼마나 중요한 과정입니까?

3. 묵상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는 비밀입니다.

시편 119편의 기자는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봅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교제를 누리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시편 기자에게 인간의 육성으로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는, 생명 자체가 아닌 글자가, 생명 없는 양피에 쓰여진 말씀을 주신 것뿐입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어떻게 인간의 육성으로 들리는 것처럼 깨닫고 있습니까?

그 비밀이 바로 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성경의 원 저자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이, 성령의 역사로 편집되어졌고, 성령의 역사로 정경화되어졌고, 성령의 역사로 번역되어진 것이 내 앞에 있는데, 성령의 역사 없이 읽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주의 종에 생각과 마음에 담기어져묵상되어진 것이, 성령의 역사로 나의 귀에 들려졌는데, 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묵상이 없다면 그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에 떨어지는 씨와 같습니다. (13:1-9)

실제로 시편 119편에 묵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그러므로 묵상은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묵상은 성령 하나님의 움직이시는 손가락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그 하나님의 음성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 손가락은 무엇을, 누구를 가르치고 있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멈추어서 다시 한번 노파심에 십자가로 집약되어지는 언약의 복음 말씀이라고 하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곧 신앙의 반석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묵상과 지난번에 나눈 주님과의 동행은 참된 지식인 십자가 복음의 언약이라는 전제조건이 없으면 신비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에 앞서 나눈 “24시간 주님과 동행하는 개인 언약기도라는 제목에서 언약의 내용이 철저하게 뿌리가 내려져야 합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16:7, 14)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의 묵상의 바탕과 목적은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고, 닮고, 증거하고, 영광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십자가 복음으로 집약되어지는 언약의 말씀에 대한 참된 지식일지라도 주님과의 동행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묵상으로만 가능한 산지식으로, 실제로 체험되어지지 않으면 Arthur Pink 목사님의 말씀처럼 그것은 죽은 지식이요, 바로 바리새인들처럼 말씀으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119:18)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119:73)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143: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묵상은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나의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 책망하시고 교훈하시고 가르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음으로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4. 묵상은 세상의 육신적인 분주함에 빼앗기는 나의 마음을 주님에게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0:39-42)

우리는 세상일이든 주의 일이든 그 일 자체에 몰두하여 주님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속임수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세상일이든 주의 일이든 주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성령 안에서의 묵상을 최우선으로 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핑계도 성립이 안 되는 사단의 속임수일 뿐입니다.

세상과 싸우고 마귀와 싸운다는 것은 나를 명분있게 분주하게 만들어 주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성령 안에서의 묵상을 누리지 못하게 하여, 주님과의 실제적인 동행을 못 누리게 하는, 내 안에 있는 죄성과의 영적싸움입니다. (영적전쟁에서의 원수는 마귀요, 마귀의 영적전쟁의 타겟은 나의 죄성이고, 영적전쟁터는 바깥세상이 아니라, 죄로 물들어서 세상 시스템으로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나의 생각과 마음의 구조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저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3:1-5)

우선적으로 주님과의 동행에서는 세상일과 주의 일이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지속되어지는 동행이 익숙해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르다처럼 주의 일을 하면서도 주님을 누리지 못하는 속임수에 빠진다면 그것처럼 안타까운 사실이 없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깊은 묵상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5. 묵상은 성도를 점점 더 영적인 사람으로 인도하고 성장하게 합니다.

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묵상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깨우쳐 주시는 것에 대한 나의 영혼의 반응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로서 묵상이 없는 신앙생활은 은혜로 주어진 믿음으로 소생된 생명이 자라지 않고 정체된 상태와 같습니다.

한 가지 확실히 알아야할 것은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신학책/신앙서적을 읽고 기도를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나의 영혼이 꿈틀거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성장으로 생명화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6. 성령 안에서의 묵상은 영적 정서를 증가시킵니다.

지금시대는 너무나도 기계화되어서 정서가 점점 메말라갑니다.

요즘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인생에 대한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질 때 제일 많이 돌아오는 반응은 “I don’t know!”라는 무지의 답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또 “So!?”라는 기계적인 답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물어보면 “I don’t care!”라는 무관심의 답이, 영이 없는 클론 인간들의 반응처럼 돌아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무관심하도록 미래의 소망을 빼앗아가는 사단의 무서운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언약의 자녀들이 정서적으로, 특별히 영적인 면에 민감하도록 묵상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 부분의 구체적인 메시지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7. 특별히 설교자에게 있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묵상은 필수입니다.

성령의 깨우치심을 통한 묵상의 과정이 없는 설교는 지식 전달이 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설교자 뿐 아니라, 교회에서 가르치는 모든 교사들은, 참 지식이 참된 묵상을 시작으로 체험되어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동참이라는 믿음의 과정을 통과한 산지식으로 증거되어지는 증인으로 서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참된 지식을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잘 전할지라도 실제적으로 믿음의 증인으로서 서지 않으면 사망을 전하는 강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쉽게 선생되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3:1)

*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성령의 인도로 되어지는 묵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싶습니다.

1. 성경을 읽거나 신학/신앙책을 읽을 때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자세로 묵상하면서 읽으십시오.

깊이 파헤치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 묵상이 아닙니다. 묵상은 나의 생각이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 밝히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성경과 신앙서적의 내용을 자세히 읽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습관은 내가 반드시 내 머리로 이해되어져야만 한다는 나 중심의 사고일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얼마나 세상적으로, 나 중심으로, 죄성으로 물들었는가에 대해서도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맹신은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사고가 믿음을 앞설 수는 없습니다. (이 내용은 오해의 여지가 많지만 앞으로 지속해서 다루어야할 내용입니다.)

특별히 성경을 읽을 때는 교과서를 읽듯이 읽지 말고 하나님께 듣는 자세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인도되어지는 묵상이 없는 성경읽기와 설교 듣기는 마치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도 묵상과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묵상이 없는 기도는 생각이 없는 혹은 의미 없는 주문일 뿐입니다. 그리고 재미도 없고 지속이 안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앞서 나눈 동행메시지에서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내용이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서의, 더 구체적으로, 영적으로 교제하는 삶에서의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기도가 어떻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격적으로, 실제적으로,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누려질 수 있을까요? 바로 그 비밀이 묵상입니다.

말씀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깨우쳐질 때 묵상을 통해서 나의 영혼이 반응하고, 그 영혼의 반응이 묵상을 통해서 다시 기도로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실제적으로,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통이 그 하루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각, 느낌, 만남, 사건, , 문제, , 행동, 계획과 연결되어져서 주님이 주님 되시도록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교제입니다.

2. 묵상할 때 기록하는 습관을 권합니다.

성경을 묵상하거나, 특별히 설교를 듣거나, 다시 듣고 묵상할 때는 성령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기도도 종종 기록하면서 합니다. 깊이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인도되어 묵상할 때 기록한 내용을 다시 돌아가서 읽으면 그 때의 감화감동이 그대로 살아나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모델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가 묵상이요, 그 묵상의 내용을 기록한 사실입니다. 기록물을 남기고 전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그 이전에 성령께서 깨우쳐주시는 내용이 너무나도 귀하고 점점 더 심오한 깊이로 인도되어지는 것을 자신이 잊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성령께서 내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깊이 뿌리내려진 죄성의 부패함을 드러내실 때 처절하게 애통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짐을 결코 잊지 않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깨우치심을 통한 영혼의 깊은 묵상의 내용들이 설교로, 교리책으로, 신앙고백 책으로, 시로, 그리고 많은 경우에 찬송가라는 산물로 바깥으로 나오게 되고 복음전파의 도구로도 사용되어지는 것이 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법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의 자녀들에게 한 가지 물건을 남기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 언약에 대한 묵상과 개인 기도문입니다.

3. 주일 예배, 수요예배, 금요 모임에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묵상되어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언약(하나님의 뜻):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통한 구원의 계획

2) 기도: 언약(하나님의 뜻)에 나의 삶/뜻이 맞추어지도록 간구함

3) 응답: 언약(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에 성취되어짐

4) 묵상: 언약성취의 응답을 확인하게 하시는 성령의 깨우침에 대한 반응

5) 성령인도: 언약성취의 응답을 묵상을 통해서 확인하면서 삶의 행동으로 단계적으로 따라감

6) 생명운동: 언약성취의 응답이 묵상을 통해서 확인되어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가면서 맺어지는 생명의 열매

이러한 신앙생활이 교회의 주간 메시지를 통해서 어떻게 연결되어지는가를 이미 몇 주 전 금요모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시한번 다음과 같은 순서로 설명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이라는 언약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성취해 가신다.

2) 하나님은 이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 창세전에 베리트개혁장로교회, 담임목사님 그리고 성도들을 선택하셨고 당신의 시간표에 의해서 만나게 하셨다.

3)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이 성취되어지기 위해서 우리교회의 현재 시간표, 성도들 개인 개인이 받아야할 응답을 주의 종의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깨닫게 하신다.

4) 하나님은 주의 종을 통해서 그 주간에 성취되어져야할 언약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신다.

5) 각 성도들은 강단을 통해서 선포되어지는 언약의 메시지를 듣고 성령 안에서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깨우쳐주시는 기도제목이 발견되어진다.

6) 주간 메시지가 묵상을 통해 기도로 연결되며 응답의 확인까지, 그리고 가능하면 성도의 교제 안에서의 나눔까지 이루어질 때 언약이 나의 개인의 삶에서 성취되어지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7) 매주간 언약이 나에게, 우리 가정에, 교회에 성취되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신앙생활은 반드시 변화되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생명을 누리는 개인, 생명을 누리는 가정과 교회가 되어질 수밖에 없다.

위의 내용을 볼 때 개인의 신앙생활과 교회의 연합의 누림에서 묵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4. 모든 나의 생각과 느낌과 말과 행동에서 순간 순간, 매일 매일, 특별히 하루를 마감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바탕으로 하는)에 의해서 평가받는 깊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139:23-24)

쓸데없는 생각은 많이 하면서 자신을 돌이켜보는 묵상이 없으면 독불장군 혹은 덜 떨어진 사람 혹은 이상한 사람, 결국에는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말이 많이 없다고 묵상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의 묵상이 없으면 말은 없는데 생각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생각은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대부분은 죄성으로 길들여진 마인드에서 돌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는 말씀과 기도의 은혜의 방편을 통한 성령 하나님으로부터의 진단이 묵상이라는 중요한 과정을 거칠 때 성숙한 신앙인, 믿음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과 사건 등이 묵상 되어지는 것이 다시 말씀으로 확인되어질 때 확실한 영적 성장이 되어질 것입니다.

특별히 인간관계에서 나를 변호하고, 포장하려는, 나 중심의 삶은 나를 점점 더 묶게 되지만,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좋고 안 좋은 일들이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으로 인도되어지는 묵상은 나를 점점 더 자유롭게 해방시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인도되어지는 묵상은 항상 나를 돌이켜보도록 도와줍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그러니 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묵상 없이 어떻게 나의 죄성을 깨닫고 십자가 앞에 나오는 회개가 가능하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묵상은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에 빼어놓을 수 없는 비밀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