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동행

2018.01.05 14:10

PastorShawn 조회 수:10

동 행

구원은 죄 때문에 주님과의 생명적 관계에서 죽었던 사람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회복되어진 생명적 관계는 어떻게 누려질까요?

구원받은 성도는 회복되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동행이라는 교제로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성장이 안 되는 이유는 아마도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우선은 처음부터 구원을 받지 않은 경우이거나, 두번째는 구원은 받았는데 주님과의 동행을 못 누리기 때문에 성장을 못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기도생활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물론 성경읽기와 신앙에 유익한 도서읽기와 또 기도마저도 하나님의 뜻인 언약 곧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한 구원사역이라는 바탕이 개인적으로 체험되어지는 참다운 믿음이 아니면 역시 죽음 안에서의 신앙생활/종교생활입니다.

올바른 교리의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은혜의 방편 곧 말씀과 기도는 인격적인 삼위 하나님과의 동행 안에서 체험이 되어져야 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구원을 받았다면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과 동행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일방적인 관계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 쌍방의 교제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누려야할 주님과의 동행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성경의 몇 본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1-10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히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구체적인 강해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적으로 이 본문에서는 구원받은 성도가 주님과 누리는 동행의 교제를 거하다라고 반복해서 표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그러면 주님 안에 거함으로 동행의 교제를 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에게 드려질 열매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생명적 관계에서 체험되어지는 동행의 신앙생활 안에서는 반드시 생명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가서 1:1-4를 보겠습니다.

솔로몬의 아가라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이 본문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아가페 사랑 나눔의 의미입니다. 곧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아가페 사랑 나눔의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과 아가서 전체를 보면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이 서로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사랑을 나눕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구원받은 성도라면 주님과 실제적으로 동행하면서 구체적으로 교제하는 것이 당연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똑같은 강조점으로 요한사도는 요일1:1-4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리신 사랑의 교제 안으로 성도를 끌어들여 서로 그 사랑을 주고받는 누림을 의미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이 본문은 교제와 동행을 사귐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귐은 상대방을 구체적으로, 깊게 알아가기 위해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서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가 누려야 할 교제 안에서의 동행과 동행 안에서의 말씀 안에 거함과 또한 기도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당연히 누려야 할 동행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동행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원래 상태가 회복되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창조의 원래 목적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

앞서 말씀 드린대로 주님과 동행하는 누림이 없다면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교제가 없는 관계일 것입니다. 혹시라도 후자일 경우에 동행에 대한 필요를 못 느낄 정도로 영적으로 무감각하다면 그만큼 사단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2. 동행은 인격적인 교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체이십니다. 구원은 인격체이신 하나님과 인격체인 내가 그 교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내 안에 인격적으로 계신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물론 내 안에 갇혀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무소부재하십니다. 그러나 구원은 임마누엘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심을 의미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 안에 두 인격체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 아침 나의 의식이 열려질 때 인격체로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내 앞에 계시다는 의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혹시라도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되어졌다면 주님,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식구들에게 인사하듯 주님의 임재를 의식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의식적으로 꺼져있는 주님의 임재 의식의 스위치를 켜십시오!”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자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격적인 임재를 너무나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2. 동행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말씀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 앞에서 듣는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는 교과서 읽듯이 하지 말고 반드시 주님, 저에게 말씀 하옵소서!”라는 사무엘의 자세가 항상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독도 필요하지만 정독도 중요합니다. 특별히 정독을 할 때 깨달아지고 은혜 되어지는 부분에서는 중단하고 기도로 깊게 들어가고, 또 필요하다면 깨달은 내용과 기도를 기록하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신저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우체부가 못생겼다고 해서, 혹은 인격적으로 나를 무시하면서 편지를 나에게 내동댕이쳤다고 해서 기분이 나빠 그 편지를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단편적인 면에서는 메신저는 단지 메신저일 뿐입니다.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3. 동행은 매일 매일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만나를 먹었듯이 주님과의 동행은 매일 매일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내용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도 그리스도의 생명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도, 한 순간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매일 성경을 읽는 것으로 영적인 양식을 먹은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주님과 살아있는 동행의 교제에서의 말씀읽기와 묵상이 아니면 그것은 아무런 생명의 영양가가 없는 말씀읽기와 묵상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의 동행 안에서의 기도가 아니면 그것은 일방적으로 내가 하나님에게 주문을 외우거나 그냥 일방적으로 던지는 죽은, 일반종교에서 하는 종교행위와 같습니다.

우리 주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에 당연히 살아있는, 매일 매일, 지속적인 동행 안에서의 교제는 당연합니다.

천주교인들을 통해서 발견하는 공통적인 현상은 하나님의 존재도 믿고 예수님의 존재도 믿지만, 그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가끔씩 성당에 가서 그 분을 만나고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매일 매일 동행하고 교제하십니까? 아니면 오로지 주일,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오십니까? 더 나아가서 여러분은 실제적인 동행이 없는 상태에서 매일 매일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만나고 돌아오고 있지 않습니까? 마치 아무런 관계와 인격적인 사귐이 없는 관공서의 사람을 매일 만나고 오듯이....

4. 동행은 삶의 모든 사건, 문제, 만남, 좋은 일, 기쁜 일 등 모든 것에서 그때그때 주님에게 물어보고, 의지하고, 언약의 성취를 확인하는, 주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주님되게 하는 것에서의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주님에게 물어보고 의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물어보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행이 중요합니다. 주님과의 동행 안에서는 모든 것을 물어보고 모든 것을 의지합니다.

모든 사건, 모든 만남, 모든 위기, 모든 문제, 모든 일에, 심지어는 모든 느낌, 모든 생각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적용되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 동행입니다.

그러므로 동행과 기도 이전에 은혜로 믿어지고 뿌리내려져야 할 것이 언약의 내용입니다.

5. 동행은 지속적으로 주님과 대화기도로 하루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생각은 24시간 돌아갑니다. 생각과 기도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생각도 너무나도 부패했기에 주로 나의 나라에서 돌아가는 생각이지 하나님의 나라에서 되어지는 생각은 너무나도 적습니다.

그래서 시편 대부분의 저자인 다윗은 항상 생각을 기도로 돌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각 앞에 주님을 붙이는 습관을 하십시오. “왜 이렇게 차가 막히지!”는 나의 나라에서 나오는 불평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주님, 왜 이렇게 차가 막히나요?”는 적어도 기도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언약의 기도 내용이 24시간 나의 생각 속에 담겨져서 지속적인 주님과의 대화기도 속에서 연결되는 것은 동행의 key입니다.

언약으로 연결되는 기도는 주님, 차가 막힌다고 짜증이 나는 것도 나의 죄성에서 나오는 것이군요. 이 죄성에서 나오는 습관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군요! 그리고 이렇게 차가 막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나 같은 것을 선택하셔서 구원하시고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시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나의 나라에서 나오는 생각이 십자가를 통과시켜서 하나님의 나라의 생각으로 변화받도록 성령으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6-7)

이 본문 역시 구체적인 강해를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우리 주님은 사도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언약의 기도가 염려의 생각을 하나님의 평강으로 변화시켜주는 비밀임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6. 동행은 온종일 주님과 대화하는 가운데에 또 특별히 시간을 따로 정하여서 깊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정하는 기도에서 중요한 사실은 나의 마음을 주님에게 정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을 주님의 뜻인 언약, 그리고 언약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정하여지도록 정한 시간 (시간을 따로 내어 드리는)에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주님의 계획이 너무나도 놀랍고 귀한대도, 나는 자연적으로 나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기에, 시간을 정하여서 주님의 언약을 묵상할 수밖에 없다는 정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57:7-8)

7. 동행은 하루 종일 의식으로, 실제적으로, 인격체이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동행이 익숙해지는 만큼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조금씩 더 누려질 것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동행은 인격적인 주님을 의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언약, 언약성취의 확인으로 인도되어지는 삶, 지속적으로 물어보는 기도, 의지하는 기도 등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라보는 것은 막연한 것이요, 신비주의로 빠지는 것입니다.

8. 동행은 하루 종일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오, 나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은 구원자시오,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내어버려두시면 나는 구제불능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내 안에는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의 역사 없이는 나는 사람 구실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전혀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9. 동행은 하루 종일 주님의 사랑을 사모하며, 주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오, 사랑으로 나에게 오신 분이 그리스도시오, 그 사랑 없이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은 미움뿐이기에, 날마다 그 사랑 받기를 사모하는 것이 동행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 안에 오셨고, 그 사랑이 모든 미움을 덮고, 그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기에, 그 사랑을 더욱 사모하고, 그 사랑을 더욱 알기를 원하고, 그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 없이는 예배도, 기도도, 섬김도, 신앙생활의 어느 것도 껍데기 일 수밖에 없기에, 아니 인생 자체가 허무하기에 그 사랑을 날마다 사모하는 것이 동행입니다.

10. 동행은 위의 모든 것이 반드시 오로지 하나님 -> 말씀 -> 언약 -> 복음 -> 그리스도 ->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좁혀지는 하나님의 뜻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하고(개인적인, 실제적인 체험), 또 이 뜻 안에서만 실제로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성부와 성령님 하나님과 함께 이 동행의 사귐을 누리셨고,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이 동행의 사귐을 누리었고, 모든 믿음의 모델들의 특징이 바로 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동행의 누림이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주님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누릴 영광은 바로 동행입니다.

그 맛을 지금 이 땅에서, 각자의 삶에서, 그리고 교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삶에서 누리라고 주신 특권이 구원신앙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여러분과 저는 지금 주님과의 동행을 깊게, 지속적으로 누리고 있습니까?

 

2017/10/27 베리트개혁장로교회 금요모임